2009년 01월 17일
세계와 정보에 대한 창조적 단절
1.
처음 '인터넷'이란 걸 접했던 그때만해도 아직 http의 웹브라우져가 아닌 gopher방식의 메뉴브라우징이였다. 그러다가 줄곧 텍스트브라우저인 lynx를 사용했을무렵이다.
인터넷은 내게 참으로 많은 문화적/존재적 충격을 주었다. 몇번의 클릭만으로 나는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고 바다 너머 먼 이국의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네트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공간이동하며 마치 차원을 넘은 신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그것은 '존재의 확장이자 편재'였다. 난 그 존재의 확장과 편재에 전율하면서 인터넷의 잠재돼있는 '신기'에 매료되었다.
한편으론 '야사/야동'이라는 포르노그래픽을 처음으로 접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당시 세계 곳곳의 유즈넷 서버에 올라왔던 야사들은 평범치 않은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일본의 그것들은. 내겐 영혼을 잠식할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인터넷은 존재의 확장과 편재를 가능케한 다른 차원의 신대륙이기도 했고 은밀한 욕망의 밀실이기도 했다. 때론 진보적 담론과 정보를 조직하고 진지이자 광장으로 '공간'을 창조해보려고도 했다. 이는 여전히 내게 미련으로 남아있다.
창조적 단절
네트 위를 유영하면서 나는 또 다른 '괴물'을 발견했다. 존재의 감당할 수 없는 확장으로 태어난 괴물. 누구나 품게되는. 그 괴물은 이념의 시대에 민족과 계급 그리고 역사의 비명이 이념이 되어 감당할 수 없이 존재가 부풀려질때 목도했던 괴물과 참으로 흡사한 때론 서로 동일체인 괴물. 나는 그 몬스터와 맞서면서 끊임없이 감각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념과 정보의 강제접속에서 살아남는 방법, 생기를 잊지않는 방법 그것이 세계와 정보에 대한 창조적 단절을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내가 살아 숨쉬는 바로 여기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감각의 세계에서 창조적이고 발칙한 반란을 꿈꾸며 일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념의 세계와 정보가 무수한 촉수가 되어 내게 달라붙어 무방비접속을 당하고 결국 이념과 정보의 노예가 되는 몬스터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네트위를 여행하는 누구나 서서히 자기 안에 몬스터를 키워가게 된다. 잠식되기 전에 세계와 정보에 대한 창조적 단절이 필요하다. 다시 오감을 살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오감 / 감각의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2.
일상의 빈곤
'생활'이 도덕적 규율 속에 갇혀있던 시대가 있었다. 일상의 창조적 발견과 재구성은 인터넷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터넷은 무수한 개인과 개인들을 연결시키고 개인은 자신의 생활세계의 편집자인자 기자이자 퍼브리서가 되었다. 일상은 사회적 폭압이 걷혀가고 엄숙한 환원주의가 쇠락해지면서, 은밀하고 부산한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쏟아지는 생활문명의 상품들과 함께 여명을 꽃피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본다.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대부분의 소재는 마치 학교갔다 집에오는 획일적인 생활계획처럼 매한가지. 맛집이야기. 상품이야기 가 태반이다. 일상은 여전히 빈곤하다. 네트 위에서 창조적인 일상을 찾아보기는 결코 쉽지 않다.
3.
철학의 빈곤
일군의 블로그들을 탐방할때면 그 정보적 풍부함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라는 자신의 주장에 풍부하게도 논리정연한 정보적 접근을 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이념적/정보적 두뇌만이 비대해진 몬스터를 발견하게 된다.
철학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얼마만큼 근접하는가라는 과학적 사유, '있는 그대로의 그것'의 존재적 가치와 아름다음을 발견해가는 심미적 사유. 그리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 자신의 존재론적 관계론적 사유. 이다.
하지만 몬스터의 이념적/정보적 사유는 오로지 플라톤의 동굴 밖, 누군가에 의해 형상화된 '이념'의 존재 앞에 오감을 바치고 이념의 눈으로 모든 세계를 분석해 들어간다. 무수한 정보들을 연결시키면서.
이는 마치 '사과가 떨어진다'는 사태에 대해...
신이 말하기를, "사과는 선이며 고래는 악이다. 사과를 떨어뜨린 자는 고래다." 하였다. 그러자 몬스터는 수천개의 코드를 접속시키고 '사과'와 '고래'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그리곤 한편의 논문을 제출한다. 결론은 '귤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난폭한 고래가 폭주하여 사과나무를 처단했다' 라고.
이념의 시대가 종언되길 원했다. 더이상 이념의 노예가 이념의 노예끼리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념의 노예는 네트의 정보들에 접속하면서 진화하고 있었다. 또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출현할까. 생기없는, 철학없는 이념적/정보적 사유는 오감과 영혼과 마음을 빼앗긴 논리검색단말기노예가 되어 버린다. 끊임없이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노예로..
4.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확장이 엄습해오거든, 네트를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아 숨쉬는 바로 여기에서, 내가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는 이 감각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 by | 2009/01/17 12:38 | 나지막하게, 세계 그리고 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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