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일기 - 대관령



1.
따뜻한 경포 어느 모텔에서 하룻밤. 몸이 가뿐해졌다. 발바닥의 물집도 아물어서 걸을 수 있다.

비가 온다. 그냥 움직이지 말고 모텔에서 하루 더 있고 싶다는 충동을 물리치고 아침겸 점심으로 '소머리국밥(?)' 먹다.
경포 몇번 왔던... 그렇고 그런 관광단지. 둘러보지 않고 바로 발길을 옮기다. 어디로 갈까. 정동진갈까. 일단 강릉으로 나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온다. 택시 잡아 타다. 택시 참 좋아 해서 큰일이다.

아저씨랑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다. 여긴 비가 오지만 대관령은 눈이 많이 온단다. 대관령까지 이만오천원으로 태워주겠단다. 가보자 대관령. 그렇게 오늘 행선지는 대관령이 되었다. 그 근처에 숙박시설도 있다고 하니 눈내리는 대관령에서 하루 지내기로 했다. 꽤나 기대가 된다.

2.
눈온다. 생각한 그림하곤 좀 다르게 휴게소 하나 딸랑? 일단 양떼목장이란 곳을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 삼천원 돌아서다 아쉬워서 들어가다. '양'이란 동물을 난생 처음으로 보다. 귀엽다. '귀여워~'라고 연발하는 여자들이 더 귀여웠지만...
새햐얀 눈천지. 그리고 젊은 커플들. 화목해보이는 가족들. 뿐. 나만 혼자다. '조금 외로울까나...' 연인들 눈치봐주면서 눈덮힌 새하얀 산책로를 셔터를 누르면서 걷다. 좋다. 아주 좋았다. 오길 잘했다. 부럽다. 내게도 저 연인들처럼.. 그런 추억의 조각들이 있었으면....

3.
조금 걸었더니 발의 물집이 '야! 힘들어' 란다. 일단 근처에 숙박할 곳을 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망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말처럼 이 근처엔 숙박시설이 없단다. 조금 도로를 내려가 펜션이 있을뿐이란다. 펜션. 왠지 비쌀것같은 위화감. 어쩌나...

횡계 시내까지 5km 라는 표지판 발견. 걸어갈까. 히치하이킹 하는 시늉을 차 몇대에게 보내 본다. .... 그냥 걸어가자. 산골마을의 정경같은 도로를 따라 걸어 가다. 눈맞으며 대관령고개를 내려간다.

4.
빈집같은 폐가. 폐축사를 지나다 저기서 쉬다 갈까? .... 많이 걸었다. 동네 할아버지에게 횡계시내가 얼마쯤인지 물어보다. 매우 경계하는 눈초리로 퉁명스럽게 대꾸해준다. 2km. 음.. 두시간정도일까. 거의 절름발이 되었는데.

5.
절룩절룩 눈맞으며 간간히 오는 차들 비켜주면서 어디쯤 왔을까... 어두워진다. 더 못가겠다. 툴툴거려 본다. 그렇게. 횡계시내 도착. 앉고 싶다. 동네가 이상하다. 벤치가 없다. 시내를 두리번 거리면서 용평리조트라는 많이 들어본 곳이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호기심발동. 무료셔틀버스가 지나가는 걸 봤는데 택시 타버리고 용평리조트로 들어갔다.

"어디서 내려드릴까요?" "네??? 그냥 숙박할 곳 근처에서... 아무데나..." "안 정하고 왔어요?" "네..."
조금 이상하단 눈치로 "그럼 저기 타워센터에서 내려드리겠습니다".....

두리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노는 곳' 이라고 결론짓고 조금 허탈하게 비웃어주면서 10분만에 횡계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올라타다. 호텔이란 곳에서 한번 자볼까? 스키도 타보고... 이내 고개를 절래거리며...

6.
밤이 되자 눈이 엄청 내린다. 이렇게 눈쌓인 동네는 처음 본 것 같다. 조금 기분도 들떠 여관으로 치킨을 배달시켰다. 노트북에 저장해온 '소울이터'를 보며 마치 내 방에서 노는 것처럼 안락한 밤을 보냈다.

어디선가 여자 비명 소리가 들린다. '위험한 상황'의 것은 분명 아니다. 허름한 여관에선 간간히 '그 소리'가 새어 들어오곤 하지만 이건 비슷하긴 하지만 비명소리다. 야릇한 상상이 감싸온다. 1시간은 지났을까 여전히 신음 섞힌 비명소리에 '그만해'라든지 '아진짜' 라든지 그러다 울어버린다. 그런데도 계속 괴롭히는 듯 비명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저정도면 남자는 광기다. 내안의 몬스터를 보는 것 같다. 여자가 불쌍하다. 빨리 헤어지기를...

새하얗게 눈쌓인 횡계에서 질척한 하룻밤이 되버렸다.


by 길아이 | 2009/02/02 04:48 | 여린 일상 그리고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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